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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키작은 이의 설움

by 大建 2014. 11. 18.

연중 제33 주간 화요일(루까 19,1-10)


나는 키가 작아서 고등학교 때까지 번호가 20번을 넘어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  나는 키가 작은 것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도 하고,  키가 큰 친구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차츰 철이 들면서 키 크고 작은 것이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경직된 사회라고 할 수 있는 이스라엘 사회, 특히 예수님 당시의 사회에서는 인간의 외면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니 키가 작았던 세관장 자캐오는 얼마나 서러움을 많이 품고 살아왔을까 짐작이 된다.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동족으로부터 멸시받는 것을 개의치 않고 악착같이 노력해서 결국 세관장의 지위에도 오르고 재산도 상당히 모은 부자가 되었던 것 같다. 로마인들의 세력을 배경으로 동족들 앞에 떵떵거리고 세도를 부리는 세관장이 되었으니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정치꾼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일단 권력에 맛들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먹는 것 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캐오도 동족들로부터 매국노라는 소리도 들었겠지만 개의치 않고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메시아라고 소문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 사람들은 죄인 취급하는 세관장 자캐오가 곁에 다가오는 것 자체가 싫었기에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그가 볼 수 있게 자리를 내어주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자캐오는 오랫 동안 잊고 살았던 키 작은 자의 설움을 느끼게 된다. 비록 로마인들에게 빌붙어 살고 있지만 그의 몸에는 분명히 유다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고, 따라서 메시아가 지나가시는 모습을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그는 체면 불구하고, 아니, 세관장이라는 지위 따위는 잊어버리고 나무에 올라가서라도 구세주 메시아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한다. 열등감을 딛고 세속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 성공한 자캐오가 이제는 구원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치심을 버리고 나무에 올라감으로써 결국 주님과 눈을, 마음을 마주치게 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놓치실 리가 없다. 그리고는 그에게 구원이 다가 왔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키가 작은 것은 관계없다.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해서 그분께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죄인이라 할지라도 메시아, 구세주,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겠다는, 모셔들이겠다는, 만나뵈옵겠다는 열망과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그분을 내 집에, 내 안에 모실 수 있고 구원에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캐오가 나무에 올라간 것은 키가 작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을 꼭 뵙고야 말겠다는 열망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자. 우리도 체면 생각하지 말고 그분께 나아가기로 하자. 구원의 문제 앞에 그 무엇이 걸림돌이 되겠는가!

                                                                                                                  (48S)

통교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 키의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