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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여장부 성녀 클라라

by 大建 2016. 8. 11.

아씨시의 성녀 클라라 축일

 

클라라는 1193년 이탈리아 중부의 아름다운 소도시 아씨시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하여, 깊은 믿음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시절 부터 신앙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였다. 1212년 3월 성지주일에 성 프란치스코의 강론을 듣고 감명을 받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하여 뽀르찌운꿀라 천사의 성 마리아 성당에서 수도복을 입고 순명을 서약한 후 "가난하게 구유에 누으신 분, 알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에 대한 강렬하고 헌신적인 흠승과 사랑, 극도의 가난 속에서 42년을 "사랑의 일치를 위한 봉쇄생활"을 하고 귀천하였다.

 

프란치스코라는 한 남성 덕분에 가족의 틀에서 벗어나 더 큰 범주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간 그녀였지만 사실 그녀는 시대를 뛰어넘는 여장부였다.

 

스승이자 벗인 프란치스코로부터 가난의 가치를 확실하게 배운 뒤에, 자신과 글라라회의 수녀들이 그 가난을 보다 철저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난의 특전에 관한 조항을 회칙에 넣으려는 고집을 꺽지 않고 결국 인노첸시오 4세 교황으로부터 그러한 조항이 들어간 회칙을 인준받았다.

 

또한 1240년 사라센 대군이 아씨시까지 침입했을 때, 클라라 수녀원도 위험한 처지에 놓여졌는데, 성녀는 성당에 들어가 제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님, 저는 당신이 사랑하는 동정녀들을 보호할 힘이 없습니다. 원하오니, 당신이 직접 전능하신 힘으로 그들을 보호하여 적의 손에 넘기지 말게 해 주소서."하고 뜨거운 기도를 바치고 일어나서 성광을 모시고 천천히 적군 앞으로 나아가자 성광에서 신비한 빛이 나서 사라센인들은 그 눈부심에 겁을 먹고 후퇴하였다 한다. 

 

이렇게 그녀는 여장부이기도 했지만, 또한 지극히 여성스러운 표상들, 즉 "거울", "정배", 그리고 "성모님의 모성을 본받는 봉쇄" 등의 개념을 사용하여 많은 글에서 클라라회의 수녀들이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삶을 살도록 초대하고 있기도 하다. 

 

클라라의 이러한 굳건한 자세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필립2,7)라고 바오로 사도가 노래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신뢰가 바탕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클라라는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부어주신 굳은 믿음과 풍부한 감성으로 프란치스꼬의 인도를 따라 온전히 그리스도중심적인 삶을 사신 분이다. 

 

클라라 성녀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의 신앙은 어떤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 안에 굳건한 주춧돌을 마련하고 하느님께서 내 삶에 마련해주신 길을 따라 충실하게 찬미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6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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