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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이혼할까요?

by 大建 2016. 8. 12.

연중 제19 주간 금요일(마테 19,3-12) 

 

본당에 있을 때, 면담이나 고백성사 중에, 폭력의 일상화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자매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이혼이나 최소한도 별거를 권고하고는 하였다. 그런데, 사제가 그러한 것을 권할 때, 오히려 의아스럽게 받아들이다가도, 창조주 하느님께서 혼인을 거룩하게 만드신 것은 치졸하게 가정에서나 폭력성에 빠져 사는 그러한 남편들이 아내의 영혼과 육신을 망가뜨리고 가정을 파괴하도록 하심이 아니라, 가장 창조적으로 아름다워야 하는 것이 혼인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면 그제서야 수긍을 하는 자매들이 있었다. 


"세상의 어느 것"도 절대화해서는 아니된다. 오로지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교회법상 혼인 무효 제도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혼률에 관한 한 세계 상위권에 속하는 우리 나라에서 그 이혼 사유를 살펴보면 "성격 차이 때문"이 가장 많다고 한다.

 

구체적인 개인사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한국인의 심성으로 말미암아, "성격 차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내용들인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부부들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파괴적인 결혼 생활이 아님에도 그저 "참아 내기, 그래서 같이 살기가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이혼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젊은 층으로 갈수록 그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부모의 성향과 환경에 따라 개인주의적 경향 아래 자라온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함께" 살아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양보와 이해를 통한 일치 보다는 독선과 아집을 통한 "자기중심성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일치와 친교의 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남녀가 각각 다른 환경과 성격 안에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 하나가 되도록 불림을 받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서로의 다름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 서로의 부족을 매워주며 서로에게 충실하고 신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혼인의 신성함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주님 앞에서 오늘 하루, 우리 각자가 가정(또는 수도 공동체) 안에서 어떤 자세로서 살아왔는지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자.

 

이기심과 개인주의적 자세로서 가정(공동체) 안에서 군림하려고 하거나, 내 이익과 반하면 가정(공동체)에 피해를 주거나 아니면 아예 무관심한 국외자 처럼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혹은 가정(공동체)의 평화와 우리 각자의 성숙을 위하여 희생과 사랑으로 나를 내어주고 가족들과 하나 되려는 자세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기도하는 신앙인으로 살아왔는지...

                                                                                                                                                                     (6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