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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원칙이 무너진 사회

by 大建 2017. 2. 3.

연중 제4 주간 금요일(마르 6,14-29)


며칠 전 어느 형제와 함께 TV 뉴스를 보다가 같이 보던 형제는 화가 난다고 그냥 일어나 가버렸고, 나는 조금 더 보다가 채널을 바꿔버렸다.

최순실이 이권을 챙기기 위해 미얀마에서 사업을 벌이는 데 비협조적인 대사를 박근혜가 갈아치우고 새 대사는 외교관도 아닌 삼성 출신 기업인을 최순실이 추천을 해서 임명을 하고,

또 국익을 위한 사업이라고 하면서 종이 한 장에 간단하게 기안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약 760억원을 들여 일을 벌이는데 그것도 미얀마를 도와주는 우리가 "갑"의 위치가 아닌 "을"의 위치로 뒤바뀌어 버린 정말 이상한 사업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도대체 원칙도 없고 상식도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 버렸다. "이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는 이야기가 곧곧에서 터져나온다. 그러니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나서 꺼버리는, 아니 아예 뉴스를 보려 하지 않는 사람이 우리들 뿐이겠는가!


어느 사회나 원칙이 무너지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법이 필요한 것이고 법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헙법인데,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뭐하는 자리도 모르는 여자 박근혜가 꼭두각시 놀음을 하다보니 이 나라는 정말 헌법부터 완전히 무시당하고, 혼돈을 넘어서 지독한 어두움에 휩쌓인 듯 하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세례자 요한은 사회에서 원칙이 무너져서는 안되고, 특히 통치자라면 원칙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점을 말하였다: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헤로디아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결국 헤로데의 생일날 헤로디아의 딸은 춤을 추었고, 그 대가로 요한의 목을 원했다.

그 청을 거절하지 못한 헤로데는 결국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원칙을 따르지 않은 헤로데 왕의 마음에는 항상 불안이 가득했다. 죄짓고는 못사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혹시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세례자 요한이 아닐까 걱정한다.


청와대에서 직무 정지를 당하고 있는 박근혜도 겉으로는 당당한 듯 보이려고 애쓰지만 속이 얼마나 타들어 갈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탄핵이 결정되면 즉시 감옥에 가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너진 원칙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과 같은 불가피한 희생도 있을 수 있고, 촛불 시위와 같은 한시적인 소요도 필수적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것들이 무서워서 원칙을 바로 세우기를 주저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이 되는 것이고 그 결과는 더욱 더 참혹하게 망가지는 사회와 나라가 되는 것이다.


이제 원칙과 상식을 되살리려는 불길이 이 나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두 그 대열에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 삶의 주변에는 나로 인하여 원칙이 무너진 일이 없는지, 그리하여 나는 마치 헤로데가 불안해 하듯이 불안해 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 반성해 보기로 하자. 그리고 내가 조금 희생해서라도 원칙이 바로서는 사회와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켜 나아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