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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완고한 마음

by 大建 2017. 8. 18.

연중 제19 주간 금요일(마태 19,3-12)


얼마 전 어떤 자매가 이야기하기를 자기 시부모가 하도 성격이 안 맞아 이혼을 고려하기에, 자식들이 권고하여 일단 당분간 별거해 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서로 편하다고만 하더니 차츰 옆에 없는 상대편의 빈 자리를 아쉬워하며 전에는 상대방의 뜻과는 엇나가던 것들을 조금씩 바꿔서 해보며 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는 아파트 베란다에 화단가꾸는 것을 좋아했는데 할머니는 벌레 꼬이는 것을 싫어해서 화단을 없애하고  투정을 부렸지만  전혀 듣지 않다가 이번에 할머니와 떨어져서 살면서는 화단을 깨끗이 치우고는 "깔끔하니 좋다"고 한다는 식이다.



이 노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부는 같이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주는 자세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 노부부도 젊은 시절부터 서로를 위해주고 이해하려 노력하고 양보하는 자세로 사랑을 키워왔으면 70이 넘은 나이에 황혼 이혼, 졸혼 등의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젊은 부부들 중에서도 "성격 차이"로 이혼하였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세우기 어려운 속사정이 있어서 성격 차이를 말하는 경우도 있지만, 실제로 위의 노부부처럼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않고 쉽게 결혼 생활을 끝내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내가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하지 않고 "성격 차이를 극복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어느 부부나 성격 차이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들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성격 뿐만 아니라 성장 환경, 가문의 풍토 등 여러 가지 차잇점을 극복하고, 적어도 극복하려 노력하며 사는 것이 결혼 생활이요, 그런 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희생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너희가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였다."고 하셨다. 나의 방식, 나의 생각만을 주장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돌보지 않고, 이해하거나 양보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바로 "완고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완고한 마음을 가질 때, 결혼 생활은 어찌어찌 끝까지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불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오늘날에는 많은 경우 이혼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 교회, 가톨릭 교회에서 결혼을 성사라고 하는 것은 결혼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것이고 부부가 서로간에 사랑으로 채워가야 하는 것임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희생하는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은총이 더욱 충만하게 그 가정에 내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고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랑도 은총도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훼손함으로써, 결국 부부 생활에 그리고 인생에 실패하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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