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강아지요 구더기인 나

by 大建 2018. 2. 8.

연중 제5 주간 목요일(마르 7,24-30)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딸의 병을 고쳐달라는 이방인 여자에게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시면서 이방인을 경멸하시는 듯한 말씀을 하신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떠한 사람도 차별없이 사랑하시는 그분께서 어쩌면 그처럼 모욕적인 말씀을 하실 수가 있는지...

무슨 다른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리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의도였을까?

 

그 해답은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그분께서는 두번씩이나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누구의 자녀들일까? 두 말할 나위없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들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자녀들"은 단순히 유다인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의 유다인들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녀들이라는 의식도 상당히 희박하였다. 

오히려 당시의 유다인들에게 하느님은 그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고 지엄하신 심판관일 뿐이었다.

 

따라서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시는 말씀은 

오히려 이방 여인에게 "너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질문인 동시에 초대인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을 강아지. 즉 개새끼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성경 곳곳에서 인간, 선택된 민족인 유다인들을 포함해서 인간을 "구더기" 라고 부르는 것을 잊지 말도록 하자.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4)" "하물며 벌레 같은 사람 구더기 같은 인생이랴?(욥기 25,6)"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시편 22,7)"

 

우리를 그토록 지극한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아버지 하느님, "우리가 부를 때마다 가까이 계셔 주시는, 주 우리 하느님"(신명 4,7)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신이 비천하고도 비참한 존재, "벌레"와도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게 된다. 그분의 아름다우심, 그분의 선하심, 그분의 사랑 앞에서 나는 한없 졸아들게 되고 스스로를 한없이 낮출 수 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강아지"가 대수이겠는가!

 

그러므로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말씀은 단지 이방인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니고, 유다인들, 그리고 오늘날의 신앙인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즉, "너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맞아들이고, 그토록 자비하신 하느님.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앞에 너 자신은 한낮 구더기, 벌레요, 강아지 같은 존재 밖에 되지 않음을 인정하겠느냐?  그리고 그 분의 엄위하심에 절대적으로 의탁하고 살아가겠느냐?" 하고 던지시는 질문이요, 도전인 것이다.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걸국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강아지"라고 불렀음을 주목하자.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 여인의 겸손한 믿음, 사실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엄위 앞에 무릎을 꿇는 믿음을 보시고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하고 그 딸의 병을 고쳐주셨다.

 

겸손이란 억지로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 특히 하느님 앞에 선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고그분의 권능에 승복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에 나오는 이방 여인처럼 우리도 겸손되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구원의 은총을 청하기로 하자.

                                                                                                                                                            (8S3Ic)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으로 가득 차  (0) 2018.12.23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봉헌 축일  (0) 2018.05.23
바라보는 삶  (0) 2018.01.12
자비로운 목자의 계산법  (3) 2017.12.12
낙타의 겸손  (1) 2017.1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