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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by 大建 2019. 5. 18.

부활 제4 주간 토요일 (요한 14,7-14)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하고 야단을 치신다.


우리도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제가가 된지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필립보와 비슷한 질문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언제쯤에야, 어떻게 해야 우리는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잘 알아모실 수 있을 것인가?

그 답은 초대교에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싶다.


초대 교회 시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있을 때 그들은 '그 도(道)'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사도 9,2 등. 200주년 기념성서 참조) 이는 그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들 주위의 사람들이 사는 길과는 다른 '생명의 도'(Way of Life. 사도 2,28)를 의미했다. 그리고 그들은 과연 세상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았다(사도행전 2장, 4장)


후에 안티오키아에서 비로소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으며(사도 11,26) 점차로 처음의 '그 도를 따르는 이들'이라는 칭호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즉 예수님의 종교는 원래 '생명의 도'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것은 예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음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써 체험하고 증거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당신은 도에 관심이 있는가?‘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추구하고 또 거기로 나아가는 "길"에 있는가? 즉 우리는 하느님의 진리를 추구하며 그 "진리" 안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초대교회 신자들과 같이 생명의 "도"를 닦는 도인(道人)인가에 대한 답일 것이다.


추구하는 삶, 정진하는 삶이 없을 때 우리는 결코 "도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도사는 아니더라도, 도(길)을 찾는 사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면 주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 9) 하고 여전히 호통을 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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