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용서의 어머니

by 大建 2019. 8. 2.

천사들의 모후 성 마리아(뽀르찌운꿀라) 축일(루까 1,26-33)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천사들의 성마리아를 기리고, 그분께 봉헌된 성당 즉 뽀르찌운꿀라 성당의 축성과 그 성당을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자비하신 은총 즉 전대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타인을 용서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증오로 가득 찬 세상엔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는 사랑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3년전 뽀르찌운꿀라 축일을 기념하기 위해 찾은 아씨시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이 용서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고요와 평화의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비탄과 증오를 품고 살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습니다. 교황님은 이날 ‘아씨시의 용서(Pardon of Assisi)’ 800주년을 기념해 아씨시의 천사들의 성 마리아 대성당을 방문하시어, “용서의 길이 교회와 세상을 진정으로 새로워지게 할 것임이 점점 자명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전대사를 받고 마는 행사를 치룰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의 죄를 사해주시듯이 나도 이웃 형제자매들의 죄를 용서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이 자리에서 하고,  나의 용서가 세상 평화의 기초가 되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같은 2016년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미사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용서하시는, 용서를 주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바로 그분을 용서의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은 아직 사랑의 충만함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용서를 하고 잊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 발치 아래서 마리아는 그분의 아드님이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을 보십니다.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보여 주면서 말입니다. 그 순간에 예수님께서 아마도 그분이 아이 때에 성모님께 배웠음직한 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복음 23, 34)라고 중얼거리시는 것을 성모님께서 듣습니다. 그 순간에 마리아는 우리 모두를 위해 용서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그리고 그분의 은총으로 성모님께서는 자기 자신이 성모님의 무고한 아들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모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랑과 용서의 아이콘이 되셨습니다.

     

     사부 성 프란치스꼬께서 성모님께 봉헌된 이 뽀르지운꿀라 성당에서 기도하는 모든 이에게 전대사를 허락해주시기를 교황께 청하고 또 승낙을 받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성모님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 하지 못하고 용서를 실천하지 못하면서 매일 묵주를 수십 단 씩 돌린다 한들 우리에게 전대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위해 자신의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도 온전히 봉헌하신 마리아, 그리고 그분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오시어 역시 스스로를 구원의 제물로 온전히 내어놓으신 그리스도를 본받지 못하고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과 나누려는 마음보다는 내 것만을 챙기려는 탐욕을 버리지 못한 채 미사에 아무리 열심히 참여한들 그 은총이 우리에게 제대로 전해지겠습니까? 

 

    결국 우리의 변화, 회개가 뒤따르지 않고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결심, 새로 태어나려는 결심, 사부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온전히 회개 생활로 매진하려는 결심과 참된 실천만이 오늘의 미사, 그리고 오늘 우리가 받게 되는 전대사라는 은총이 참으로 갚진 보화가 될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살아가도록 합시다. 

 

    사부님께서 자주 하셨던 다음의 말씀을 보다 더 자주 기억하도록 합시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회개 생활에서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으니 이제 다시 시작하도록 합시다”.

* 본 블로그에 게시된 모든 사진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며 저작권자와의 상의없이 이용하거나 타 사이트에 게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cf.  '총용서’(Perdono generale)  =  ‘전대사’(Indulgenza plenaria)

 

                                                                                                                                               (9S3Ic)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야에서의 피정  (0) 2020.01.02
가장 큰 계명  (0) 2019.08.23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0) 2019.05.18
인성 교육  (0) 2019.03.20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1) 201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