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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가장 큰 계명

by 大建 2019. 8. 23.

연중 제20 주간 금요일(마태오 22,34-40 )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아마 이 바리사이 율법교사는 자신이 사두가이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예수님의 말문을 막아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다가 온 것 같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에 할 말을 일었을 뿐더러 계속 이어지는 말씀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마테 22,41-46) 앞에서는 "바리사이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예수님께 감히 묻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고 한다.


사실, 사두가이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당시에 누구 못지 않게 성경 말씀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었던 사람들,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는 지식은 남에게 드러내기 위한 지식이었을 뿐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게 영광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지식이 아니었기에, 예수님 앞에서 그렇게 KO패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전해지는 하느님의 진리를,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살아가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한 어른이 흙길을 기어가는 지렁이를 잡아 손바닥 위에 놓았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놓아주라고 보챘다고 한다. 사람의 체온 때문에 지렁이가 화상을 입기 때문이란다. 


어린이다운 천진난만한 발상이지만 우리 어른들, 특히 신앙인들이  깊이 묵상해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이 어린이는 지렁이를 그저 징그러운 벌레가 아닌, 가엾은 하나의 생명체로 바라보았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선이 모든 창조의 끝에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 하느님의 따뜻한 시선이요, 피조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지녀야 할 아름다운 시선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이 어린이에게서 배울 수 있다면 , 당신의 모상대로 나를 아름답게 창조해주신 하느님의 손길을 생각하며 자긍심을 가지고 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게 되고, 그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돌려드리고, 또 이웃을 내 몸(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세상 만물, 모든 피조물 안에서 하느님의 손길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은 성경 말씀, 계명 중에 어떤 것이 더 큰 말씀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린이에게서 배우자. 어린이다운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다가가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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