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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걱정도 팔자?

by 大建 2012. 6. 23.
연중 제11 주간 토요일(마테 6,24-34)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어머니와 내가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어머니께 자주 드린 말이 있었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다.
어머니는 무척이나 소심하신 편이었고 무슨 일에나 걱정[각주:1]을 많이 하시는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걱정도 팔자요" 하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씀드리고는 하였다.
사실 어머니와 같이 소심한 사람들의 경우에 걱정은 팔자 탓이 아니라 성격 탓인 것이다.
흔히 기질적인 성격은 변화시킬 수가 없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개선될 소지도 있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27),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34)"
하시며 우리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권고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걱정한다고 하여 해결되는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걱정은 결론적으로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우리네 인간이 하는 걱정은 근본적으로 미래에 대한 것이고,
보다 근원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미래를 알지 못하며 살아가도록 창조된 인간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걱정한다는 것,
그리고 탄생과 죽음의 권한을 쥐고 있지 못한 인간이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하여 염려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이러한 이유로 예수께서는 걱정을 하느님 아버지께 "붙들어 매놓으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들꽃을 먹이시고 입히시는-양육하시는- 분이시거늘,
당신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인간을 얼마나 잘 보살피시겠느냐는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들꽃도 아름답게 꾸미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그러한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없을 때 우리는 재물과 권력을 쟁취하고자 기를 쓰며
그런 것들이 우리의 미래(죽음 이후까지도 포함하는)를 보장해주리라 믿게 되고,
결국 그러한 것들을 신(맘몬)으로 섬기게 된다.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어제의 복음 말씀은 바로 이러한 바탕에서 하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이 만물의 주재자이심을 믿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를 그분에게 맡겨드리고 살아야 한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만 있다면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두려울 것이 없는 것"(시편 23,4)이 우리의 신앙이다.

한편,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느님을 바라보기만 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33)", 그분의 뜻을 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미래를 하느님과 더불어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당신과 더불어 하느님 나라를 일구어 나가는 자녀에게 아무 것도 베풀어 주시지 않는다면
그러한 분이 과연 우리의 자비로운 아버지이실 수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이 모든 것(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아버지께 대한 신뢰를 회복하자. 그리고 걱정을 떨쳐버리자.
소심한 성격도 노력 여하에 따라서 변화될 수 있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이 계시기에...

                                                                                    (25L)











  1. 국어사전에는 걱정이라는 말에 대하여 "1 안심이 되지 않아 속을 태움.2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3 마음을 써서 보살피거나 수고하는 일" 이렇게 세 가지로 정의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첫번째의 의미로서만 사용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