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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서원과 세심정 이전 글 : http://adoro.tistory.com/2841 산천재를 떠나 우리는 계속해서 남명 선생의 유적인 덕천서원으로 향했다. 덕천서원은 1576년(선조 9)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제자들이 세웠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파괴되었으나, 1602년(선조 35)에 중건(重建)하였고, 1609년(광해군 1)에 사액 서원이 되었으며, 1796년(정조 20)에 중수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0년(고종 7)에 훼철(毁撤)되었다가 1918년에 중건(重建)되었다. 덕천서원 길 건너 강가에는 세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세심정은 덕천서원을 지을 때 함께 지은 정자라고 한다. 세심(洗心)이란 말은 주역(周易)의 "성인이 마음을 .. 2015. 3. 27.
김해건설공고 매화 김해건설공고에 다녀왔다. 이곳은 경남권에서 매화를 빨리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 사진사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김해건설공고의 매화는 수령이 80년 이상된 고목들로, 운치있게 휘어진 가지에서 피어난 매화꽃의 자태가 세월의 흔적과 멋을 느낄수 있게 한다 마치 용이 꿈틀 거리는 것 같은 모습을 지녀 와룡매라고도 부른다. 이 학교의 매화나무들은 김해건설공고의 전신인 김해농고였던 시절에 한 젊은 일본인 교사에 의해서 심어졌다고 한다. 2015. 3. 24.
폐가 진주청동기문화박물관 근처에서 사진을 찍고 이동하여 간 어느 마을이다. 유난히 폐가가 많았다. 사람이 사는 듯한 집도 인기척은 없고 뭔가 스산한 분위기였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무슨 사정이 있어서 정든 산천, 온갖 기쁨과 아픔이 서려있을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났을까? 또 어디로 가서 제대로 자리나 잡고 사는지 생각이 미치차 마음이 아려온다. 문에 써 있는 "반공"이라는 두 글자가 무척이나 오래된 시절을 말해주는 것처럼 낯설어 보인다. 저렇게 허무하게 폐기되어 없어질 것이 이데올로기(이념)인데 왜들 그리 거기에 목을 매는지... 사실 그 이데올로기를 이용하면서 사리사욕만 채우는 남과 북의 사악한 정치꾼 놈들 탓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허물어져가는 문닫힌 석유판매소 건물에 붙어 있는 나무보일러 판매 포스터가 무.. 2015. 2. 27.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통도사에 홍매화가 개화했다는 소식과 사진들이 올라오길래 놓치고 싶지 않기에 달려갔지만, 활짝 핀 꽃송이들은 몇 송이 없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하길래 꽃들은 따뜻한 날씨에 앞당겨 꽃을 피우고 인간들은 그러한 자연의 성급함을 헤아리지 못하는 시절이 되어버렸구나... 漢나라 元帝 때 서북방 흉노족에게 볼모로 후궁을 한 명을 간택해서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데, 元帝는 후궁 중에서 제일 못생긴 사람을 보내기로 하고 궁중화가인 모연수(毛延壽)에게 후궁들의 초상화을 그리도록 하였는데, 다른 후궁들은 서로 오랑캐의 첩으로 간택될까 두려워 궁중화가인 모연수에게 서로 이쁘게 그려달라 청하며 금은보화를 뇌물로 바쳤지만 王昭君은 청렴 때문인지, 황제에 대한 신뢰 때문인지, 가난 때문인지 뇌물을 바치.. 2015. 2. 4.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 부산 감천동 문화마을에 다녀왔다. 1950년대 태극도 신앙촌 신도와 6·25 피난민의 집단 거주지로 형성되어, 계단식 집단 주거형태와 미로같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마을에 2009 마을미술 프로젝트 의 작품과, 2010 콘텐츠융합형 관광협력사업 의 작품이 함께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 공간으로 형성되어 부산의 새로운 명소를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다. 맞은편 위쪽에 보이는 것이 아미성당이다. 벽화마을을 여러 곳 가보았지만 이렇게 문화적 명소로 새롭게 자리매김한 곳은 처음이다. 곳곳에 찻집과 기념품점이 들어서 있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과연 저 업소들이 원래 그 마을 주민들에 의해 운영되거나 최소한 그들에게 어느 정도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렇지 않다면 관광객들만 북적이게 만듦으로써 거주민.. 2015.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