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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10

씨앗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밭의 흙인 사람 연중 제24 주간 토요일 (1코린 15,35-37.42-49; 루가 8,4-15) 1. 우리가 농사를 짓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역시 밭이나 논을 만들고, 땅을 고르는 작업이다. 비옥한 땅으로 가꾸지 않으면 공연히 씨를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우리도 마음의 밭을 일구고 가꾸지 않으면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 복음의 말씀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것이다. 2. 복음에서 말씀하시듯이 씨앗은 "말씀"이다. 이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그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므로 씨앗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실에 마주치게 된다. .. 2015. 9. 19.
불후의 말씀 연중 제34 주간 금요일(루까 21,29-33) "불후의 명곡"이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높은 모양이다. 그런데 불후(不朽)라는 말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사전에 의하면 "불후"는 "썩지 아니함이라는 뜻으로, 훌륭하여 그 가치가 영원토록 변하거나 없어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시대 노나라의 숙손표가 '死而不朽'(죽어도 썩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 불후의 최상은 덕을 세우는 것이고, 다음은 공을 세우는 것이고, 다음은 말을 세우는 것(大上有立德(대상유립덕), 其次有立功(기차유립공), 其次有立言(기차유립언))이다. 덕과 공과 말이 오랜 세월을 견뎌 사라지지 않을 때, 그것을 일러 불후라 한다." 또 한유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남겼다. "살아서 덕을 쌓지 못하면, 아무리 오.. 2014. 11. 28.
희망하시는 하느님 연중 제3 주간 수요일(마르 4,1-20) 오늘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려주신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보통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미리 밭을 고르고 이랑을 파고 이랑에 가지런히 씨를 부린다. 그래야지만 씨의 낭비가 없이 많은 수확을 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에서는 씨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앗이 길에도 떨어지고 돌밭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졌다. 누가 보든지 참으로 서툴게 일하는 농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씨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을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하느님을 이렇게 서툰 농부로 묘사하였을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씨가 떨어지는 각각의 밭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의문이 풀린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 2013. 1. 30.
부러운 "엄친아"? 연중 제27주간 토요일(루가 11,27-28)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는 대개 허구의 인물이거나 과장되게 자녀들에게 묘사된다. 그만큼 많은 어머니들은 자녀들을 잘 교육시키려는 마음도 있지만 사실 그 마음 속에는 그런 아들을 둔 친구 또는 친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러나 여기 누구나 부러워 할 엄친아가 있으니 바로 예수님이다. 그런 엄친아를 둔 엄마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 그런데 그 엄친아의 대답은 영 "아니올시다!"이다. 자기 "엄마"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성모님의 불행(?)을 말씀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2011. 10. 8.
너희는 신이다 사순 제5 주간 금요일(요한 10,31-42)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시편 82,6을 인용하시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하신다. 이 인용문에서 "신"은 천상적 존재들 또는 재판관들을 가리키는데, 유다교 주석에서는 이 말씀을 재판관들만이 아니라 전체 이스라엘인들에게도 적용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유다인들의 주석에 따라, 만일 그러하다면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분 그 자체이신 당신이야말로 얼마나 더 그러하시겠냐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모독 운운할 이유가 없다는 말씀이다(주석 성경, p395, n.30). 참으로 속이 후련해지는 자기 변론이다. 유다인들은 허를 찔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걸고넘어지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 2011. 4. 15.
단순한 마음 안에서의 육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이다. 하느님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동정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아기를 잉태하리라는 것을 예고함으로써 우리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기리는 축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것은 단순한 예고만이 아니다. 사실상(de ipso facto), 육화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는 것이다. 마리아는 갑작스런 천사의 방문을 받고 또 잉태의 예고를 받고 한동안 당황해 하고 또 주저거리는 모습도 잠깐 복음서에서 볼 수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니도 평범한 한 인간이고 또 꽃다운 처녀였는데... 그러나 신앙의 여인이었던 마리아는 마음을 굳히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이 몸은 당신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 2010.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