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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19

사랑의 십자가 승리하리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13-17) 오늘은 "거룩한”(聖) 십자가의 현양 축일이다. 십자가는 절대 거룩한 것이 아니다. 거룩하기는커녕 죄인들을 매달던 죽음의 형틀이었으며, 따라서 인간이면 누구나 끔찍하게 생각하는 저주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저주스런 것이 거룩한 것으로 바뀌었는가? 어떻게 저주스러운 것이 거룩한 것으로 들어높임을 받게 되었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매달리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매달리셨기 때문이다. 당신 생명을 온전히 바쳐 드러내고자 한 하느님 사랑이 그 십자가에 달렸기 때문이다. 인간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음을 당신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 2011. 9. 14.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연중 제14 주간 금요일(마테10,16-23) 오늘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에 대해 예고하고 계신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와 증오를 받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무엇인가는 다르다는 사실 때문이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단어는 sanctus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자주 ‘성도’(聖徒) 혹은 ‘성인’(聖人)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의 표준적인 의미는 ‘거룩하다’이다. 그리고 이 근본적인 의미, 어근적인 의미는 ‘다르다’이다. 거룩한 것은 다른 사물과 무엇인가 상이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다. 초대 교회에서 그리고 그후 한국과 세계 교회의 역사 안에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박해를 받고 또 순교를 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2011. 7. 13.
구약의 하느님, 신약의 하느님? 흔히들 말하기를 "구약의 하느님은 정의의 하느님이시고 신약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시라고 말들 한다. 그러나 내가 성경을 읽어보고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구약의 하느님이나 신약의 하느님이나 모두 같은 정의의 하느님이시요, 또 무엇보다도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진정 구약의 하느님께서 신약의 하느님과는 다른 정의의 하느님이라면 나는,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그러한 하느님을 믿지 않았을 것이고, 진작에 구약성경을 폐기처분하였을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을 수식하는 말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HESED"라는 말인데, 이는 "자비"를 뜻하는 말이요, 또 다른 표현으로 "사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말이다. 이렇게 하느님은 근본적으로 사랑 자체이신 분(1요한 4,16)이요, 그분께서.. 2009. 4. 22.
비굴한 제자들의 모습 성주간 수요일(마테 26,14-25) ==================================== 만찬 석상에서 예수께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 모습들이 얼마나 비굴해 보이는지... 차라리 "비록 모든 사람이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마르 14,29) 하던 베드로의 순진한 호기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내가 주님 곁에서 그 당시에 함께 식사를 하였더라도 역시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여쭈었을 것이다. 그렇게 비굴해 보이는 것이 아니, 비굴한 것이 우리 인간이다. 우리 각자는 저마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약속을 하고 살고 있지만, 그동안.. 2009. 4. 8.
38년만의 해방 사순 제4 주간 화요일(요한 5,1-16) "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이 있다. 오래 앓는 사람을 간호한다는 것이 힘들기에 긴 병을 알고 있는 부모를 자녀들 마저도 결국은 포기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38년이나 앓아누워 살아온 사람이다. 이미 오래전에 가족들도 나를 포기했기에, 나는 혼자서 벳자타 못 주변에서 생활을 하였고 물이 움직여 치유의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기를 쓰며 못 가까이 가보려 노력해보지만 누가 도와주지 않았기에 매번 허사였다. 처음에는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원망도 하였고 다른 이들이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섭섭해 하기도 하였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나는 모든 것을 체념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 "건강해지고 싶으냐?"하고 묻는다. 이렇게 누워지내는 -그것도 .. 2009. 3. 24.
마지막 잎새 비록 담쟁이 잎은 아니지만 저 마지막 잎새는 O. 헨리의 단편소설을 상기시킨다. 가난한 화가 지망생인 존시는 폐렴에 걸려 죽어가고 있으며 이웃집 담쟁이덩굴의 잎이 모두 떨어지면 자기의 생명도 다한다고 생각한다. 비바람이 휘몰아친 다음날 틀림없이 나목(裸木)으로 있어야 할 담쟁이덩굴에 마지막 잎새가 하나 그대로 붙어있는 것을 보고 다시 삶의 의욕을 갖게 된다. 기운을 차린 존시에게 친구 수우는, 그 마지막 잎새는 불우한 이웃의 늙은 화가가 밤을 새워 담벼락에 그려 넣은 진짜 이 세상의 마지막 잎새임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죽어가고 있는 존시? 나는 바로 이웃집의 늙은 화가 베어맨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존시는 부질없이 떨어져가는 낙엽을 보며 거기에 희망을 두었.. 2008.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