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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19

구원하시는 하느님 부활 제2 주간 수요일(요한 3,16-21) 흔히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하느님은 "대대자자대대비비하신 분이아닐까?" 하고 혼자 너스레를 떨어 본다. 그렇게 자비하신 하느님이신데, 그분이 종말에는 우리를 엄하게 심판하시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두려워 하기만 하는 신앙인이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사랑 자체이시고 자비 지극하시다는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을 어찌 그리 엄하게만 다루시겠는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심판을 불러들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 뜻에 맞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감으로써 구원을 불러들일 수도 있고, 반면에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다.. 2020. 4. 22.
옷깃만_스쳐도_인연 성녀 스콜라스티카 기념일, 연중 제5 주간 월요일(마르 6,53-56) 오늘 복음에서는 "(사람들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56절)고 한다. "#옷깃만_스쳐도_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옷깃을 만지고자 하고 또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가!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이 세상 모든 사람들, 특히 우리와 인연을 맺으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또한 그분의 옷깃만이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다가오기를 바라시는 분이시며 또한 우리가 그렇게 하여 단순히 당신과 관계를 맺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_완성시키는_구원"을 받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이제 그 인연의.. 2020. 2. 10.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연중 제14 주간 금요일(마테 10,16-23) 나는 625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태어났기에 그리고 그후에도 전쟁에 참여한 일이 없기에 전쟁의 참상에 대해 전해 들었을 뿐이지 그게 얼마나 끔찍한지 실제로는 잘 모른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들어 아는 바로는 전쟁에서는 생존만이 절대 선이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휴머니즘이나 인간다움을 찾기 힘든 것이다. 전쟁이나 전쟁과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면 인간성은 말살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워낙 참혹한 것이지만, 전쟁의 상처를 쉽게 잊거나 지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같은 민족 간의 전쟁일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우리의 625전쟁이 그렇고 스페인 내전이 그렇다. "같은 민족인데 어떻게 그리 잔인하게?" 라는 의문을 품기 때문이며, 이것은 다.. 2017. 7. 14.
끝까지? 언제까지? 연중 제14 주간 금요일(마테 10,16-23) 오늘 복음은 파견되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희망을 주신다.이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 시대에는 사도들이나 순교자들이 당했던 것 같은 전면적인 박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세속화된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수많은 유혹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때로는 신앙인답게 애덕을 실천하면서 살기 위해서 정말 다른 이들의 질시와 미움 등을 받으며 상처 속에 괴로워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또는 하느님 나라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애쓰다가 불의한 공권력을 휘두르는.. 2016. 7. 8.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연중 제34 주간 수요일(루까 21,12-19)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닥쳐올 수 있는 박해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 결론은 "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하는 것이다. 인내하는 사람은 "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말씀이다. 병행구인 마테 24,13에서는 "끝까지 견디어 내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전해진다.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박해 앞에서 "인내"할 것을 강조하셨다는 사실이다. 제30대 미국 대통령이었던 캘빈 쿨리지(재임 기간 1923∼1929년)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세상의 어떤 것도 굴하지 않는 인내의 힘을 이길 수 없다. 인내와 강한 결심만이 전능하다.”쿨리지는 ‘인내와 강한 결심(열정)’을 "전능하다"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곧.. 2015. 11. 25.
믿음을 보시고 연중 제13 주간 목요일(창세 22,1-19; 마태 9,1-8) 오늘 제1 독서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제사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과연 아무련 미련이나 갈등도 없이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을까? 아닐 것이다. 일찌기 아우구스띠노 성인은 아브라함의 제사 이야기를 주석하면서, 하느님으로부터 늙으막에 선물로 받은 외아들 이사악을 진정 하느님께 제물로 다시 바쳐야 하는지 갈등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느님께서는 "너는 나를 더 사랑하느냐? 아니면 내가 준 선물을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고 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잘 살게 된 것을 결코 자신의 노력의 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었기에 결코 집착하거나 안주하려 하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살 수 있었.. 2015.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