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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35

▶◀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2009. 5. 29.
겸손한 사람 대림 제1 주간 월요일(마테 8,5-11) +++++++++++++++++++++++++++++++++++++++++++++ 오늘 복음에서 로마인 백인대장은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당시의 사회에서 백인대장이라 하면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위가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외적인 조건이 그 삶의 인격을 드러내 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복음에 나오는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인격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위엄을 깨달았습니다. 그랬기에 기꺼이 예수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성 프란치스꼬의 한 제자가 환시 중에 하늘의 수많은 옥좌 가운데에서 다.. 2008. 12. 1.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대축일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대축일 마테 11,25-30 형제 자매 여러분, 단순하고 가난한 성 프란치스꼬가 누렸던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사부님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대축일입니다. 성인께서는 1182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아씨시라는 작은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유한 포목상인이었던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와 어머니 삐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부를 누리며 살아가던 한 청년이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으로써 세상과 교회가 변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는 제자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하였고, 또 무엇이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기에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개신교도, 불교도, 심지.. 2008. 10. 4.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8 이전 글 - [믿음 희망 사랑/프란치스꼬] -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7 3.2. 교회-사회적 차원 프란치스칸 공동체는 자체 안에 닫혀 있을 수는 없다. 교회와 사회에로 개방하는 행위를 항구히 지속해야 한다. 즉 “원수들”이나 “도둑들”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 벗이나 원수, 도둑이나 강도 등 모두를 친절하게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에 있든지 또 어느 곳에서 만나든지 형제들은 영적으로 사랑을 갖고 서로 대하며 불평없이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1 회칙 7,14-15). 이렇게 프란치스꼬는, “벗”이나 “원수”의 구분없이,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친절한 영접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성 프란치스꼬의 잔 꽃송이”.. 2008. 2. 29.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3 이전 글2008/02/22 - [믿음 희망 사랑/프란치스꼬] -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2 II. 평화의 사도 프란치스꼬 초기의 전기 작가들에 의하면 프란치스꼬의 복음적 성소는 천사들의 모후 성 마리아 성당에서 그가 사도들의 파견에 대한 복음을 들을 때 명확해졌다고 한다.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 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말라.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토마스 첼라노에 의하면 프란치스꼬는 이 복음을 듣는 순간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2008. 2. 23.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2 이전 글 : 2008/02/21 - [믿음 희망 사랑/프란치스꼬] -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의 평화의 정신 1 2. 역사 안에서의 아씨시의 프란치스꼬의 영적 체험 2.1. 젊은 몽상가 아씨시의 프란치스꼬는 1182년에 태어났으니, 이 시기는 중상주의가 만개하던 시기였다. 그의 아버지 베드로 베르나르도네는 그러한 상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며 포목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득세를 하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계층 출신인 프란치스꼬의 젊은 시절은 당연히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회오리 바람 속에서 발달하게 된다. 아씨시를 휘어잡고 있던 성채, 봉건 제도의 상징인 로까 마죠레를 시민들이 붕괴시킬 때 그는 16 살이었다. 그리고 아씨시의 시민들이 스스로 선포한 그 자유를 방어하기 위해 도시 주변에 성.. 2008.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