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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480

게으른 목자의 넋두리 연중 제4 주간 토요일(마르 6,30-34)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먼저, 제자들은 열심히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 주님께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고" 나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기에" 주님으로부터 "좀 쉬어라" 하는 말씀을 듣고 휴식을 취하는데, 나는 내 멋대로 쉬는 날을 정해놓고 열심히 일을 하지 않은 주간에도 무조건 쉬려고만 하니 말이다. 두번째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쉬게 하시고는 당신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쉬시지도 못하고 여전히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분으로부터 목자로서의 부르심을 받고 살아간다고 하는 나는, 양떼에게 측은지심을 느껴 그들을 잘 먹여 배부르게 하기 보다는 나 혼.. 2020. 2. 8.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학자 기념일(연중 제3 주간 화요일: 마르 3,31-35) 설 명절 동안 함께 모였던 가족이 다시금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조금의 후유증과 함께 일상 속에 묻히게 되는 시기이다. 오래간만에 자식들을 만난 부모님들은 그들이 떠난 빈 자리가 허전해서 며칠 동안 또 마음고생을 할 것이고, 자식들도 나름대로 부모 형제와의 해후를 통하여 마음 속으로 들어온 온갖 긍적적이거나 부정적인 온갖 감정의 잔해들을 추스려야만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가족은 과연 무엇인가?"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자그마한 일로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동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회복될 수 없을만큼 날카로운 말끝으로 내 가슴을 후벼파기도 하는 저 사람들, 가족은 과연 어떤 존재들일까? 서로 사.. 2020. 1. 28.
나를 따라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마르 2,13-17) 예수님 당시에 로마 침략자들에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던 세리를 향하여 따뜻하게 말한 마디라도 건네는 유다인은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테오를 불러 주신 것이다.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 세리 마테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은 당신을 따르라고 따뜻한 마음으로 불러주시는 그분을 향하여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로, 즉 회개하기로 확실히 결심했다는 뜻이다. 로마의 권력자들을 위해서 향응, 잔치를 베풀던 그가 이제 새 스승,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진정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로 다짐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이기심을 포함하여 내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분과 함께 .. 2020. 1. 18.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공현대축일 후 토요일(요한 3,22-30)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요한3,27) 인간은 모든 선의 근원이신 하느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받아누리며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단지 그분이 맡겨주시는 동안만 관리하며 그분의 뜻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관리권만을 지닐 뿐이다. 세례자 요한은 제자들을 소유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세상의 그 어느 부모도 자식을 소유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그토록 철저히 소유없이 살며 가난을 실천하고자 한 이유다. 내가 그 어떤 것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할 때 나는 더 많은 것을 지니고자 하는 욕심을 내게 되고, 또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해 폭력도 불사함으.. 2020. 1. 11.
광야에서의 피정 성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기념일(주님 공현 전 목요일; 요한 1,19-28) 바실리오와 그레고리오는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해 광야에 나가 살던 은수자들이었다. 그 결과 위대한 수도자, 목자가 되었다. 세례자 요한 또한 광야에서 은수 생활을 하였다. 그 역시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의 준비를 위해, 그리고 메시아의 시대 안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한 하느님의 뜻 을 구하기 위해, 또한 스스로가 깨달은 바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그리 하였다.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 또한 공생활 이전에 광야에서의 은수체험을 하였다.이처럼 광야는 우리와 하느님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인간은 자신이 외톨이, 가난한 자임을 깨닫고 오로지 하느님께 의탁하고 그.. 2020. 1. 2.
가장 큰 계명 연중 제20 주간 금요일(마태오 22,34-40 )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아마 이 바리사이 율법교사는 자신이 사두가이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예수님의 말문을 막아버리겠다는 심산으로 다가 온 것 같다. 그러나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는 예수님의 지혜로운 대답에 할 말을 일었을 뿐더러 계속 이어지는 말씀 "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마테 22,41-46) 앞에서는 "바리사이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날부터 예수님께 감히 묻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고 한다. .. 2019. 8. 23.